백제도 망했다? 39

제39화 꽃잎, 꽃잎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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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웹툰,웹소설
강사명 입센
수강일수 180일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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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화


 꽃잎, 꽃잎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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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머언 마을의

 산과 들을 질러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흩어졌다가는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형태로 부침하는

 그것들은 소리가 없었다.


 "언젠가 우리가 저 구름처럼 사라져도 아무런 흔적이 없겠지.”

 "전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죽은 우리 화랑들 소식 있던가?"


 둘은 한껏 웃었다.

 그 웃음은 같았다.


 "스님이 말씀하시지 않던가. 우리 삶이 잠깐의 번갯불이나 천둥과 같은 찰라의 빛이나 소리와 같다고······어디가서 그 사라진 흔적을 찾을 수 있겠나?”


 이제 똑바로 똑바로 내리퍼붓던 햇빛은

 조금씩 옆으로 비껴나고 있었다.


 붉은 해가 점점 산 속의 집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탓이었다.


 "자네는 두렵지 않은가?”

 "조금도 두렵지 않아. 눈에 보이는 것은.”


 키가 큰 청년이 꽃잎을 입에 물었다.

 그것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부서진 꽃잎들을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뱉아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지 못하지.”

 "그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세상을 움직이지.”

 "그것이 두려워.”

 "흐흐, 자네도 두려운 게 있긴 있구만?”


 키가 작은 청년이 앉은 채로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아래 마을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돌은 얼마 가지를 못하고

 새들이 울고 있는 잡목숲 속으로 떨어졌다.


 "이번 싸움에 나라의 운명이 걸렸는데······”

 "나라의 운명도 걸렸지만 우리 운명도 걸렸지?"


 키가 큰 청년은 하늘을 보며 물었디.

 키가 작은 청년이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인가를 알았다.

 그러나 대답은 엉뚱했다.

 

 "겨울이 오면 이 꽃들은 모두 지겠지.”

 "허지만 봄이 오면 다시 피지 않겠나?”


 키가 큰 청년이 여전히 입에 문 꽃잎을 뱉아내며

 그렇게 묻자 여전히 돌을 던지며

 키가 작은 청년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우스운 얘기지. 한번 가버린 것은 다시는 오지 않아. 다시는······”

 "그런가?"

 

 키가 작은 청년이 계속해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지난 번 숲속으로 들어가던

 두 남녀의 모습을 잊기 위해서였다.


 "처음 맺은 인연은 누구도 바꿀 수가 없지?"

 "바꾸고 싶나?"

 "바꾸고 싶네."

 "응?"


 작은 키의 청년이 순순히 대답했다.

 키가 큰 청년이 한숨을 쉬었다.


 "자네와 내가 서로를 바꾼다면?"

 "알고 있어."

 "그러나 이미 정해진 것."

 "미안하네."


 키 큰 청년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키 작은 청년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래서 작은 키의 청년이 말을 돌렸다.


 "스님을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스님을 만나야겠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겐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마지막?"

 "전장에서 누가 목숨을 장담할 수 있는가?"

 "새삼스럽게?"

 "아니, 그저 얼굴이라도 뵙고 싶어서······못 뵌 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났으니······단지 그것뿐일세.”

 "아무리 그래도 왕명을 거역하면서까지······만약 다른 사람이 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걸세.”

 "왜, 걱정이 되나, 그렇다면 자네는 예서 기다리게 나 혼자 후딱 다녀옴세. 아마 이런 내 몰골을 보면 스님도 오래도록 반기시지는 않을걸세. 잠깐이면······ ”

 "난 어쩐지······”


 키가 작은 청년이 난처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키가 큰 청년이 흔쾌히 일어서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번져나고 있었다.


 "꽃을 보는 눈, 새소리를 듣는 귀, 그것이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나?”

 "느닷없이 그건 무슨 소리?”

 "헤어지면 반드시 다시 만나고, 만난 것은 반드시 다시 헤어지는 법.”


 키 작은 청년이 물끄러미

 키 큰 청년을 바라보았다.


 "스님과 꼭 같은 말을 하눈구먼.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말을 알지 못하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곳에 살아있다는 것뿐.”

"스님은 자네의 그 마음을 알고 있을 걸세.”


 키가 큰 청년이 천천히 가파른 산길을 잡았다.

 그리고는 몇걸음을 옮겨 놓았을까,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싸움에서 돌아오면 선례하고 혼인을 하기로 했네······”

 "......!"


 여전히 꽃숲에 앉은 키 작은 청년이 멀건히

 산으로 오르는 키가 큰 청년의 뒷모습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둥지를 찾아가는

 저녁 새떼들이 하염없이 날고 있었다.

 키가 큰 청년이 흠운(欽運)이었고

 키가 작은 청년이 경우(慶宇)였다.


 "사람이란 무었이냐?


 출전(出戰)을 앞두고 찾아온

 흠운에게 스승 전밀법사(轉密法師)는 조용히 물었다.

 그의 유난히 긴 눈썹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사람이란 네 발 달린 짐승과 다르게 두 발로 걸어다니며, 말 할 재주를 가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 목숨을 버리는 시기와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라야 사람일라 할 수 있습니다."


 흠운은 전밀법사 앞에 단정히 끓어앉은 채

 나직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늘상 그랬지만 전밀법사 또한

 흠운과 꼭같이 무릎을 끓어앉은 자세였다.


 "그렇다면 사람의 목숨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이냐?”

 "늙고 병들어서 더 살 수 있는 힘이 없을 때까지 그냥 살아가는 것은 값 있는 목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다운 일을 위해서는 사흘을 살다 죽더라도 영원하게 사는 것이 참 목숨입니다. 화랑은 언제든지 죽을 때에 죽어 영원한 목숨을 얻는 데 그 수련 의의가 있다고 믿습니다.”


 법당 밖.

 빠알간 노을이었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사람인 것이 분명하거늘 어찌해서?"

 "제 힘으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죽여 영원한 목숨을 얻는다고 하느냐?”


 전밀법사 혜선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눈썹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화랑도장에서 수양한 것은 죽을 장소와 시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전밀법사가 일어섰다.

 흠운이 말을 이었다.


 "이제 적진에 나가면 이기기 전에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선례공주와 혼인을 약속하고?"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죽겠다는 이야기군?"

 

 어차피 목숨을 부지하는 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전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 이 끝없는 전쟁을

 끝막음 하고 싶었다.


 흠운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풍경이 울고 있었다.


 "무엇 때문이야?"

 "...!!'


 흠운은 대답하지 못했다.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다 부질 없는 짓!"

 "꼭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전밀법사는 이미 면벽을 하고 있었다.

 물론 늘 그랬듯이 한마디

 하직인사도 배웅도 없었다.

 그리고는 곧 어둠이었다.


 무열왕 2년.

 숙적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는 연합해서 동맹군으로 신라의 변방을 공격해 왔다.

 왕은 토벌군을 출동시켰는데

 

 흠운으로서 낭당대감(郎幢大監)의 중책을 맡겼다.

 어린 나이에 그만한 중책을 맡기란

 아무리 뛰어난 화랑이라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한 흠운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날부터 막사 안에서 눈을 붙이는 법이 없었다.


 병채 중심의 자기 숙소는

 병들고 부상한 군졸들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비바람을 맞으면서 노숙하는 병졸과 고락을 함께 하였다.


 "대감의 몸으로 이런 고생을 하시다가 만일에 병이라도 걸리시면?"

 "선봉을 지휘하는 중책에 큰 지장이 생깁니다.”


 같은 화랑 출신으로 둘도 없는 친우인

 부장 경우는 근심스런 얼굴로 간청했다.


 수많은 싸움,.

 수많은 결전.


 그때마다 죽기를 각오하고,

 아니 어쩌면 화랑의 가르침대로 싸움에 나가

 승리가 아니면 죽기 위해서 적진 깊숙이

 필사적으로 돌진하는 흠운의 목숨을 지금까지 이어 준 친구,


 흠운이 있는 곳에 그가 있었고

 또한 그가 있는 곳에 흠운이 있었다.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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